열정이란 말을 들으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무래도 저는 사랑이란 말이 가장 먼저 그 뒤를 따라 나오게 됩니다. 사랑과 열정을 한 단어처럼 쓰던 때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은 바로 그 사랑의 열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감정에 깊이 빠져볼 수 있습니다.
도서리뷰
작가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화자는 어느 한 남자를 기다리는 것으로 온 하루를 다 써버립니다. 그에 관해 생각하고, 그가 좋아할 옷을 사고 온통 그 사람을 이유로만 움직이고 반응합니다. 어딘가 멍한듯 현실감이 멀어 보이는 화자의 모습은 자신을 잃을 정도로 무언가의 심취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려볼 수 있는 얼굴일 겁니다. 기다리던 사람은 어느 날 불쑥 집안으로 돌아왔다가 찰나를 영원처럼 사랑을 나눈 뒤 기약 없이 떠나버립니다. 영영 떠나버릴 것 같은 예감을 주기도 합니다. 차라리 그날이 와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날들을 살기도 합니다. 그 사람이 떠난 후에 남은 이불의 모양 같은 것만이 상대가 존재했었음을 알려주는 이 감정에는 너무도 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이 있었음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는 빈약한데, 빈약한 그것에 의해 화자의 존재는 통째로 흔들립니다. 이런 감정을 단순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단순하고 빈약한 증거들만큼 그것을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요. 그에 대해 화자는 글로 쓰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이 기록은 어느 열정이 살아있고 죽어가며 남긴 그을림 같은 것입니다. 한 사람을 헤집고 빠져나간 열정의 흔적이라 부름직한 것 말입니다. 누군가 앉았다가 일어난 방석 위의 생긴 주름 같은.
감상평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겪은 일만 쓰는 작가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은 거북한 장벽을 만들기도 합니다. 허구로 읽기에도 쉽지 않은 이야기를 본인의 경험이라고 하니 읽는 입장에서는 두 배로 무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그의 책을 읽게 되는 이유는 지나친 감정주의가 아니어서 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는 사실만을 씁니다. 자신을 연민하지도 않고, 사건을 과장하지도 않습니다. 어찌 보면 담백하고 또 달리 보면 건조해 보이는 문장 속에서 독자는 "에이즈라도 남기고 간 거였으면 좋겠다" 같은 파격적인 문장을 어떻게든 읽어갈 수 있습니다. 불륜 소재라면 질색하는 제가 불륜의 감정을 전면으로 다룬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작가의 분신이라고 여겨도 좋을 화자가 유난을 떨지 않는데 제가 화내고 싫어하고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읽다 보니 이것이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의 글인 거구나,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소재 얘기만 듣고 피해 왔던 책들을 하나 둘 시도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입니다.
추천대상
사랑에 흠뻑 빠진 감정 묘사를 읽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온종일 한 사람만 생각하는 기이한 현상에 대해 이 소설은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니 에르노를 아직 접해보지 못한 분들도 이 책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짧고 이해하기 쉬우니까요. 기존에 제가 들어왔던 아니 에르노의 작품 중에는 가장 접근 장벽이 낮은 작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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