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음식을 가장 먼저 먹는 사람과 가장 나중에 먹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전자다. 의식적으로라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껴봤자 득 되는 것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뺏기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문구 제품에서 특히 그런 태도가 두드러진다. 스스로를 문구 덕후라고 칭할 정도는 아니지만, 지출의 꽤 많은 부분을 노트와 필기류에 할애하고 있다. 스티커도 만만치 않게 산다. 새 제품이 주기적으로 방 안에 들어찬다.
그런데 의외로 미개봉 제품이 별로 없다. 그 자리에서 뜯어 쓰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스티커의 경우 한 자리에서 전부를 쓴 적도 있다. 손에 꼽을 정도이기는 하지만 한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스티커를 쓰는 데 망설임이 없어졌다.
굿즈 스티커라고 다르지 않다. 한때는 나도 모으기만 하던 팬이었다. 이 아까운 걸 어떻게 쓰냐며 잡지고 스티커고 엽서고 손상 없이 보존하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허무했다. 이삿날을 앞두고 일일이 비닐에서 빼느라 고생만 했다.
팬심이 식은 지 수년이 된 상태였기도 했지만, 잡지나 엽서, 씨디, 스티커 굿즈 등의 완전 제품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사진에 이름이라도 써놨으면 좀 달랐을까?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떤 물건을 오래 보존하기 위하여 나의 흔적을 묻히기 시작한 것은. 그 사이 나는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이 점은 좋아하는 스티커나 포토 카드, 엽서 등을 보관하기에도 유리했다.
수집한 물건이 있으면 일기장에 곧장 스크랩한다. 스티커를 붙이고 날짜를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노트는 버리지 않을 나의 기록물이니까.
어제는 달달이 하민이 굿즈를 잔뜩 주었다. 늦덕인 나로서는 전부 처음 보는 것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스티커를 뜯어 붙이는 내가 친구들에게는 별로 놀랍지 않았을 것이다. 동영상으로 찍어둘 만큼 웃겼을지는 몰라도.
어제 미처 다 못 쓴 스티커와 포카를 챙겨서 출근했다. 시간 나는 틈틈이 다이어리에 붙이고 꾸미니 월요일의 피로도 금세 흐려진다.
이래서 덕질을 하고 굿즈를 모으지.
탐욕 많은 다람쥐처럼 끌끌거리며 오래 간직하고 들여다 보고 싶은 순으로 포토 카드와 스티커를 고른다. 하민이 진짜 귀엽고 멋지고 예쁘구나. 실실 웃으면서 들려주고 싶은 멘트만 골라서 또 다른 스티커를 붙인다. 붙이고 보면 하민이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역시 난 대단해!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자! 아름다움의 어원은 나답다 라는 것.
따라 해!
사랑스러운 우리 막내 깜냥이 목소리가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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