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바 아사미는 남자친구인 도미타 마코토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낯선 남자와 통화를 하게 됩니다. 남자는 도미타의 스마트폰을 주운 사람이라고 자신을 밝힙니다. 아사미는 몰랐습니다. 도미타가 자신과 찍은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해놓았을 줄은. 그 사진을 보고 남자가 자신을 타깃으로 정했을 줄은 더더욱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이 떨어뜨린 스마트폰을 범죄자가 주웠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을 몇이나 될까요. 이 소설은 그런 안이한 태도에 허를 찌릅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대비하지 못한 틈을 비집고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을 보여줍니다.
시가 아키라의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사건 소재로 하기에 더욱 공포스럽습니다. 무심코 일어난 일상의 작은 사건이 한 사람의 생활을 파괴하고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을 겁니다. 범인은 굉장히 교묘한 수법으로 아사미의 일상을 잠식해 갑니다. 페이스북 도용 페이지라든지, 피싱메일이라든지. 가지각색으로 발전해 온 사이버 범죄를 매일 같이 접한 지금으로서는 별반 새롭게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에 넘어가는, 아니 넘어갈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심리는 책이 출간된 2017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때문에 지금도 몰입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은 표적이 된 아사미와 범인, 그리고 시체를 발견한 형사 세 사람의 관점으로 진행됩니다. 범인의 시점이 물론 가장 읽기 힘듭니다. 눈에 띄는 건 형사의 시점입니다. 어느 산에서 시체를 발견한 형사들은 수사에 착수하지만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범인과 아사미의 심리전이 바쁘게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서 수사는 그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큰 원을 그리듯이 더디게 진행되어 갑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속도감이 느껴지다고 할까요. 빠르게 진화되어 가는 사이버 범죄의 속도를 당시의 경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일본 추리 소설에는 "일본 경찰은 우수해!"라는 대사가 거의 공식처럼 보일 정도인데, 신선했습니다.
아사미는 속물이고, 도미타는 우유부단하며 스마트폰을 주운 남자는 답이 없습니다. 등장인물 중 대부분이 비호감입니다. 이는 페이스북에 노출되는 그들의 호감적인 모습에 더한 대비를 주기 위한 설정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시 비호감인 캐릭터를 따라가기는 힘든 법입니다. 마지막 한 방은 기발했으나, 엔딩의 감동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늘 뭐 읽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1, 쓰루타니 가오리 만화 추천 (0) | 2023.02.06 |
---|---|
미라클모닝, 할 엘로드 당신의 하루를 바꾸는 기적 (0) | 2023.01.24 |
[책/에세이] 뉘앙스, 성동혁 (0) | 2022.01.12 |
[책/에세이] 에세이 만드는 법, 이연실 (0) | 2021.07.07 |
[책/에세이] 딱 하나만 선택하라면, 책 (0) | 2021.03.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