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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세이] 아무튼, 반려병

by 호랑. 2021.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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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반려병/강이람/제철소/밀리의 서재/크레마 그랑데

 

강이람 저자의 《아무튼, 반려병》을 읽었습니다. 반려병이라니 무슨 말일까, 문서 같은 걸 계속 되돌려 보내는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쓴 이야기인 걸까, 제목만 들었을 때는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는데요. 알고 보니 그야말로 반려, 반려동물 할 때의 반려에 병이났다는 병病을 써서 반려병이었습니다. 병을 달고 사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거죠.

 

아무튼 시리즈로는 취미나 애정템 등 좋아하는 대상을 얼마나 열렬하고 진지하게 좋아하는지의 이야기를 주로 접해왔던지라 조금 의외의 기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저자 역시 이 점을 알았던지 《아무튼, 반려병》을 손에 든 독자에게 “아니, 어떻게 이 책을 펼치게 되셨나요?”하고 묻고 싶다고 하는데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바로 웃음이 터져버려서, 생각보다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시리즈가 표방하는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잔병에 의해 만들어진 수동태”일 뿐이라는 말도 꽤 설득력 있게 들렸고요.

 

책 속에는 자잘한 병들 때문에 고생하는 저자의 경험담이 들어있습니다. ‘또 아파?’나 ‘나도 아파봤어’하는 말을 들을 때의 기분이나 사회생활이 나를 약골로 만드는 과정, 큰 마음을 먹고 이직을 해봤자 과음에서 과로로 넘어갈 뿐인 현실과 병원을 다니며 겪었던 일, 가족들이 아프면 생기게 되는 일 등. 내가 선택한 적 없던 갖가지의 병들이 돌아가며, 때로는 함께 오며 나를 선택했기에 받아들여야 했던 현실에 대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이 ‘받아들임’이라는 자세가 저는 참 인상 깊었는데요, 아픈 나에게 화를 내고 불평만 퍼부어봤지 그 자체로 저 자신을 바라본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병을 주도적으로 치료하려고 애를 쓰는 동시에 어차피 완전한 건강이라는 것은 없다며, 골골거리는 나 자신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저자의 태도가 놀랍고 닮고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저 역시도 이런저런 병을 달고 사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확률이 높으니까요.

 

크게 아픈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좀 골골거릴 뿐인데 그게 뭐 대수라고. 저는 이 말부터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대신에 제 몸이 골골거리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며, 조금이라도 그 골골거림을 완화시키기 위해 내 몸을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할지를 더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굉장히 건강한 마음을 갖게 하는 책입니다. 오래 골골거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물을 찔끔하며 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반려병
국내도서
저자 : 강이람
출판 : 제철소 202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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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아파봤어”는 언뜻 동감해주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상대의 고통을 엄살로 바꾸어버리는 말이다.

 

● 환자는 치료의 대상이면서, 회복의 주체이기도 하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가 있다 한들, 결국 그 치료의 완성은 환자가 가진 자기회복능력에서 이루어진다. 치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의사겠지만, 회복의 문을 닫고 나오는 것은 환자의 역할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둘은 모두 ‘낫는 것’에 목적을 둔 하나의 공동체이다. 비즈니스적으로 본다면 의사와 환자는 동업자 정도가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의사는 이 비즈니스의 방향이 무엇이고 어떻게 진행될지를 소상히 환자에게 공유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환자에게는 모르는 게 약이 될 수 없다. 검사를 통해 병명이 나오기까지 환자들은 비합리적이고 극단적인 추론에 의해 모든 가능한 병들을 짐지게 되기 때문이다. - < 아무튼, 반려병, 강이람 (지은이) > 중에서

 

● 언니의 나이 듦은 건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병듦이 언니를 압도하지도 않았다. 건강의 잔고는 계속 쓰고 있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도 잘 살아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내가 옆에서 지켜본 언니의 나이 듦이다. - < 아무튼, 반려병, 강이람 (지은이) > 중에서

 

● 건강이란 단지 ‘병에 걸려 있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병이 나도 괜찮은 상태’를 의미한다. - 로타르 J. 자이베르트 외, 『단순하게 살아라』 (유혜자 옮김, 김영사)

 

건강의 개념을 조금 다르게 해석한 이 생각에 완전히 동의한다. 괜찮다는 것은 사전적으로 “탈이나 문제, 걱정이 되거나 꺼릴 것이 없다”인데 꺼릴 것이 없다는 그 표현이 꽤 마음에 든다. 몸 자체가 건강한지 아닌지가 관건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건강한지를 기준점으로 보는 것이다.

 

● 사실 건강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 100점을 맞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병을 이기다(beat)’, ‘병마와 싸우다(fight)’라는 표현 때문인지 자꾸 건강이란 ‘이겨서 쟁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플 때마다 늘 낙방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일 테다. 

 

● 하지만 앞서 말한 날씨와 기후처럼 건강의 조건이 원래 열악한 사람에게 ‘완전한’ 안녕은 너무 먼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건강이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자연스러운’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바꾸어 말하고 싶다.

 

_강이람, 《아무튼, 반려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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