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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작열

by 호랑. 2020.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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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아키요시 리카로│마시멜로│밀리의서재│크레마그랑데

 

아키요시 리카코의 《작열》을 읽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소설입니다. 추리 미스터리 장르라면 반전이 있는 건 당연할 테고, 저 또한 그 부분을 기대하며 읽어나갑니다만. 정말 의외의 방식으로 이야기가 맺어집니다. 읽을 때도 그렇고 읽고 난 후에도 여러모로 곱씹을 게 많은 소설입니다.

 

소설은 새 하얀 도자기가 깨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어느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이 깨진 파편들을 수습하는 모습만으로도 이 소설이 어떤 형태로 완성될지 대략적으로나마 윤곽이 그려집니다. 미심쩍은 쪽은 아내입니다. 그녀는 남편을 곁에 두고도 전 남편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부서진 도자기 잔해에서 옛사랑의 뼛가루를 봅니다. 한없이 다정하기만 한 남편의 옆에서 그러는 이유가 뭘까요. 그 적개심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마음이 앞서서 페이지가 빨리 넘어갑니다. 표지에서 보았던 강렬한 문구가 머릿속에서 번쩍입니다.

 

 

“남편의 복수를 위해 얼굴을 고치고 살인자의 아내가 되었다!”

 

 

살해당한 남편의 복수를 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얼굴을 취하고 용의자와 결혼한 여자. 이 엄청난 설정은 우리가 복수라는 이글거리는 불길에 두 눈이 멀었을 때 어떤 결심까지 하게 되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서서히 변해가는 주인공의 심경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란 악한 마음으로 굳어지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들끓는 복수심을 끝까지 밀어붙이기에 우리는 선하고 다정한 마음을 너무도 잘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습니다.

 

점점 약해지는 마음. 하지만 다시 얼어붙는 마음. 내 남편을 죽인 남자에게 마음이 기울다가 그 남자에게 정체를 들키고 살해당할지 모른다고 마음을 졸이다가. 생생한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따라가는 동안 의문에 싸여있던 진실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냅니다. 전남편 다다토키는 정말 사기꾼이었을까요? 그는 정말 히데오에게 죽임을 당한 걸까요? 히데오는 사키코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요? 사키코는 자신의 복수를 이루게 될까요?

 

 

“그건 그렇고 조심해야겠네. 완벽하게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예상치도 못할 때 뜻밖의 장소에서 파편이 튀어나와 다치기도 하는 거 보니 말이야.”

 

 

저지른 죄는 사라지지 않고 망쳐버린 관계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무더운 태양 아래 “한 남자의 인생이 다 태워”지고 “한 여자의 마음에 그 남자의 모습을 각인처럼 새겨 넣”는 소설. 작열이었습니다. 다 타버린 잔해 속에 허무함이 감돕니다. 그런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습니다.

 

 


 

작열
국내도서
저자 : 아키요시 리카코 / 김현화역
출판 : 마시멜로 2020.11.20
상세보기
 증오하는 상대를 곁에 두고 충동을 억누르며 사랑하는 척해야 하는 건 지옥이나 다름없다.
 결코 저물 리 없는 증오라는 태양에 온몸이 타들어 갔고 절망의 사막에 맨발이 달구어졌으며 분노의 화염이 몸속에서 이글이글 타올랐다.
 하지만 나는 이 작열하는 지옥 속에서 악착같이 나아갔다.
 언젠가 이 업보가 집어삼키겠지.
 히데오를.
 그리고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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