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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읽지

[책/에세이]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

by 호랑. 2020.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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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기은 작가의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를 읽었습니다. 11년간 음식과 술을 다루는 에디터로 일하고, 지금은 두 명의 동업자들과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가 본격적으로 풀어내는 먹는 이야기입니다. 푸드 에디터란 어떤 일을 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전문적인 경험담부터 다이어트의 고충이라거나 편애하고 편식하는 음식 종류 등의 소소하고 확실한 취향까지, 골고루 잘 차린 밥상 같은 책입니다. 식욕이 돋는 것은 당연하고요, 입가의 침을 스윽 닦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먹는 일에 진심인 사람은 진심으로 먹고 싶은 글을 쓰는 법입니다. 식욕을 가진 인간으로서 그 공격을 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책을 읽다가 울컥하는 순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저자가 장차 손바bar라는 불리게 될 술방을 만들고 갖가지의 술을 곁에 끼고 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간 무심하게 놓쳐 온 즐거움이 가슴을 칠 만큼 억울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나 부지런히 먹으며 살아왔는데 아직도 못 먹어본 음식이 지천에 널렸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행복하면서도 한쪽에선 다급한 욕망이 펄펄 끓어오른다.
아직 못 먹어본 음식이 너무 많은데, 하루 세 끼밖에 못 먹으니 마음이 다급했던 시절이었다. 아 물론 지금도.

 

 친구들에게 곧 잘 ‘잘 먹고 잘 살아라’라고 말합니다. 특히 결혼하는 친구들에게는 잊지 말고 그 말을 붙입니다. 귀에 익은 어감상(잘 먹고 잘 살아라~) 빈정거림이나 장난으로 비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늘 진심이었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덧붙인다면 잘 자는 것까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건 그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그 정도만 지켜진다면 다른 일은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습니다.

 

 셋 중에서 그나마 자의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잘 먹기’입니다. 그건 조금만 신경을 써도 눈에 띄게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기기로 합시다. 모니터 앞에서 가래떡 한 줄을 질겅질겅 씹는 것으로 점심을 퉁치려던 제가 꾸역꾸역 엉덩이를 일으킨 이유입니다.

 

 저는 오늘 코다리찜으로 한 상 거하게 차려먹었습니다. 비록 음식점에서 포장해온 음식이긴 하지만 상을 차린다는 과정만으로도 제 인생에 정성을 다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코다리는 맛이 좋았습니다. 흰 밥에 양념을 싹싹 비워가면서 야무지게 밥공기를 비웠습니다. 부른 배를 텅텅 두드리자 세상이 잠시 만만해지는 것도 같았습니다. 일류가 된 기분이 이런 거구먼, 후식으로 탄 커피가 평소보다 더 달고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갔습니다.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
국내도서
저자 : 손기은
출판 : 드렁큰에디터 20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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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 마시는 일, 그것을 또 콘텐츠로 만드는 일은 나에게 최애 엔터테인먼트다. 뭘 먹을지 고민하고 차리고 방문하고 열심히 먹고 그걸 또 기억으로 축적했다가 다시 끄집어내는 과정은 그 무엇보다 즐겁고 신나는 일련의 플로우다.

 먹는 일만큼 즉각적으로 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동인도 없다. 잘 살려면 잘 먹어야 한다는 진리를 굳이 소환할 필요도 없이, 평범한 하루는 그저 먹기 위해 굴러갈 때가 많다. 다행히도 나의 무기력증은, 나의 번아웃은, 식욕의 수레바퀴 앞에서 우지끈 깨지고 만다.

 이 책에 담긴 뜻대로 다들 잘 먹고 잘 버티었으면 좋겠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녀처럼 행복하다고 읊조릴 수 있기를.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또 혼자 가슴이 뜨끈해져 “와씨, 행복하네” 하고 말했다.

 몸과 맘이 힘든 때일수록 ‘더 맛있는 거, 더 특별한 거, 더 짜릿한 거’를 외쳤고 주저 없이 실행으로 옮겼다. 울거나 웃거나 수다를 떨고 화를 내는 것보다 성게알 올린 생새우 한 점, 라가불린 16년 한 잔, 흰 쌀밥 위에 올려 먹는 소스 흥건한 옛날 돈까스 한 쪽, 새벽 2시에 먹는 뼈해장국 한 그릇이 나에겐 더 크고 빠른 위로였다.

 처음 내는 책 치고 제목이 조금 웃길지 몰라도 이것 역시 진심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사회와 거리를 둬버리게 된 2020년의 나도,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매일 방황할 게 분명한 미래의 나도, 힘들 때마다 맛있는 걸로 그 구멍을 잘 메웠으면 좋겠다. 잘 먹고 힘내서 일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글 말미에 다짜고짜 ‘기대가 된다’라고 마무리하는 문장을 극도로 피해왔지만 아휴, 나에게만은 이제 기대도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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